일상2018. 10. 23. 06:02

몇 년전 어느 강의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다섯 마리 원숭이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한 마리 원숭이가 사다리 위에 놓여진 바나나를 먹으려고 사다리를 오르면 위에서 나머지 네마리 원숭이들에게 차가운 물을 뿌렸습니다.

다른 원숭이들도 바나나를 잡으려고 계속 시도할 때마다 나머지 원숭이들에게 위에서 차가운 물을 뿌렸습니다. 

원숭이들은 바나나를 잡으려고 하면 차가운 물을 뿌린다는 사실을 습득했겠죠?

이후로 한 마리 원숭이가 사다리에 오르려고 하면 나머지 네 마리 원숭이가 공격을 하였습니다.


기존에 있던 원숭이 중에서 한 마리를 빼고 다른 원숭이 한 마리를 집어 넣습니다.

새로운 원숭이(1)는 당연히 사다리 위에 있는 바나나를 먹고자 사다리를 오릅니다. 

기존에 있던 네 마리 원숭이는 그 원숭이를 못 올라가게 공격합니다.

새로운 원숭이(1)는 차가운 물 대신 다른 원숭이들의 공격 때문에 바나나를 더 이상 탐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원숭이(2)가 또 교체됩니다. 새로운 원숭이(1)과 같이 바나나를 잡으려고 사다리에 오르려고 하면 새로운 원숭이(1)을 포함한 다른 원숭이들의 공격을 받습니다. 새로운 원숭이(2)는 새로운 원숭이(1)과 같이 바나나를 탐하지 않습니다. 


-관련자료 출처- 

https://brunch.co.kr/@jade/291


이 이야기는 Gary Hamel과 CK Prahalad가 쓴 'Competing For The Future'이라는 책에 처음 등장합니다.

차가운 물벼락을 맞은 기존 원숭이들의 공격 때문에 새로운 원숭이들은 이유를 모르는 채 바나나를 탐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래서 기존 습관이나 문화에 젖어 이유도 모르는 채 잘못된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행동 양식을 일깨우기 위해 언급됩니다. 저도 그렇게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이야기를 적폐에 대한 이야기로 예를 들면서 직장이나 사회에서 이런 문화를 다시한번 생각해보자는 뜻으로 이야기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곱씹으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원숭이들이 이유를 모르는 채 바나나를 잡으려고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과연 이유를 모를까요? 

새로운 원숭이들은 주변 원숭이들의 공격을 받았으니까 바나나를 잡으려고 하지 않은 겁니다. 아무 이유를 모르는 게 아니라요.

새로운 원숭이들이 이유를 모른 채 바나나를 탐하지 않았다는 관점에서 비추어 보면 기존에 있던 원숭이들도 차가운 물을 맞을 때 "왜 차가운 물을 맞아야 하지?"라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존 원숭이들이 차가운 물에 자극을 받아 바나나를 탐하지 않은 행동과 새로운 원숭이들이 주변 원숭이들의 공격을 받아 바나나를 탐하지 않은 행동은 같으니까요.

바나나를 탐하지 않게 된 동기는 기존 원숭이들에겐 차가운 물이고, 새로운 원숭이에겐 주변 원숭이들의 공격인 셈입니다.


'원숭이와 사다리 위의 바나나 실험'을 통해 잘못된 행동 양식을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정반대의 생각으로 흘러갔습니다.

장소마다, 시대마다 그렇게 해야만 했던 이유가 존재했을 것입니다.


저도 직장에서 이것저것 업무방식을 바꿔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방식을 바꾸면서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결국 혼자서는 바꾸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학생들에게 종이로 받는 설문지 통계방식입니다.

급식이나 체험학습 후 만족도 조사, 교육청, 외부기관 요청에 의해서 한달에 한번 정도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합니다.

종이로 된 설문지를 나눠 주고 학생들 설문이 모두 작성되었는지 확인이 되면, 각자 완성한 설문지를 바탕으로 손을 들어서 결과를 통계냅니다.

"자, 1번에 1번이라고 한 사람 손들어볼까?"

"저요"

"1번에 2번이라고 한 사람 손들어볼까?"

"선생님 1번이라고 썼는데 아까 손 못 들었어요."

"자 다시 가자. 아까 1번에 표시했던 사람 손들어봐. 아까랑 왜 손 든 사람이 다르지? 손 번쩍 들어봐."......

그 다음은 뭐... 분위기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처음에 이렇게 설문조사를 하는 것 보고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렇게 설문조사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종이에 쓰게 하는지... 아, 근거를 남겨야 하니까요. 그렇다면 손을 들면서 체크하라고 하면 소요시간을 더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또 한가지, 설문조사는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름을 적지 않는다면(무기명) 비공개가 원칙 아닐까요. 그런데 기껏 종이에 무기명으로 적어놓고 손을 들어 통계를 낸다?

그나마 조금 원칙적인 방법은 설문지를 다 걷어서 빈 설문지에다가 바를정(正)자를 써가며 체크하는 방법입니다. 25명 정도되는 설문지를 1번부터 10번까지만 5개항목을 하려고 해도 30분 가지고는 끝이 안 나겠지요. 

그래서 생각한 게 엑셀로 통계를 내는 방법입니다. 

학생들이 입력한 번호를 엑셀에 그대로 숫자로 입력하고 그 숫자를 카운트하는 겁니다. 

그러면 통계내기도 편하고 시간도 적게 걸립니다. 

이런 설문조사 통계를 늦게 제출하면 집계하시는 분이 불편하거든요. 

자기는 이미 다 했는데, 아직도 결과제출을 안 하는 학급이 있으면 무슨 급한 일이 있어서 안 하시나 라는 생각부터 듭니다. 제출이 늦어지면 쪼임을 당하는 사람은 결국 집계자이고, 자기가 늦은 것도 아닌데 메시지나 전화로 통계제출 아직 안 되었냐는 말을 들으면, '난 다 했는데....'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오지만 참습니다. 

한 때는 이런 엑셀 통계방법으로 동학년과 학년말 교육과정 평가 설문조사 전교생 것을 통계 낸 적이 있습니다. 통계를 내면서 돌아가는 분위기도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한다는 게 보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반복될 수록 설문통계는 당연히 저에게 돌아왔고, 일부 사람들은 제가 엑셀 통계방법을 가르쳐드린다고 해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시더라구요.

안 배워도 어차피 제가 해드리니까요. 그래서 어느 해부터는 안합니다. 저희 반 통계만 냅니다. 간혹 "설문통계 낼때 이런 방법이 있어요"라고 동학년 회의 때 말씀드려도 여전히 학생들이 거수하는 설문통계 내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차라리 그게 낫지요. "그래? 그럼 자기가 우리반 것 좀 해줘. 금방 한다며."라는 말을 들으면 아차 싶을 때가 많아요.


원숭이 바나나 실험에서 적폐에 대한 교훈을 얻으려다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렀네요.

원숭이 바나나 실험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기존 원숭이들은 물벼락을 맞아서 바나나를 집지 않았지만 새로운 원숭이들은 다른 원숭이들의 공격때문에 이유없이 바나나를 집지 않았다입니다. 

'이유없이'가 주요 단어 같은데, 저는 이 이유를 다른 원숭이들의 공격 때문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유가 없지는 않다는 것이지요. 

원숭이와 사람의 차이점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사람은 "왜 이렇게 하나요?"라고 물어보면 됩니다. "그냥 이렇게 해"라고 들었다면 "그럼 다르게 해보는 건 어떨까요?"라고 하거나 "저는 이렇게 해볼게요."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저도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조목조목 설명해줘야 할 때가 많거든요. 그러면서 저도 "어? 진짜 왜 이렇게 하지?"라고 생각하는 점이 많습니다. 

앞서 예를 든 설문조사 방법에서 손을 들게 하여 통계를 내는 것은 예전엔 컴퓨터가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 방법일 것입니다. 요즘은 컴퓨터를 이용 안하면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불편해집니다. 통계결과 제출을 해달라고 했는데 손으로 쓴 설문통계를 제출하면 집계자는 그걸 또 컴퓨터로 입력하는 시간과 노력을 해야하니까요. 


원숭이 바나나 실험에서 새로운 원숭이(5)는 "왜 이렇게 하나요?"라고 질문할 겁니다. 그럴 때 새로운 원숭이(1)의 답변이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최소한 "우리때는 말이야 ...."라는 말부터 시작한다면 새로운 원숭이(5)는 "차가운 물벼락은 지금 안 나오니까 모르겠고요, 저한테 공격이나 하지 마세요."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시대와 장소에 적응하면서 생겨난 행동들이 많습니다. 시대와 장소가 바뀌면 그런 행동들도 바뀌어야 합니다. 그 변화를 수용하는 자세 또한 중요합니다. 

'기존 원숭이들의 공격'을 '인간적으로', '정 때문에', '다 너를 위해서'라고 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그런데요. 원숭이와 사다리 위 바나나 실험이 나온 책을 찾다 보니까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발견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1996년 이후로 계속 언급이 되었는데, 결코 검증 된 적이 없답니다. 비슷한 실험은 있었는데요.

-관련자료 출처- 

http://www.throwcase.com/2014/12/21/that-five-monkeys-and-a-banana-story-is-rubbish/


이야기가 '기존 관습에 얽매이지 말자'라는 교훈을 주고 있는데, 이야기 자체가 기존 자료를 검증도 안 하고 그대로 언급했다는 것이 어불성설 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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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窮則通